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는 삶

출근길, 많은 사람들이 어깨와 손에 하나 또는 두 개 이상의 가볍거나 무거운 가방과 함께 출근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그런 흔한 모습을 점점 없애가는 중이다.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게 된 건 작년 겨울부터였다. 서울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선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말없이 행동만 빠르게 바쁘게 가방을 스치고 간다. 난 그 스치듯 안녕하는 사람들에게 여러 번 몸이며 가방이 치이는 사소한 반복적인 일에 짜증이난 상태였다. 게다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상처가 생기는 내 가방이 불쌍했다. 이런 사소한 문제 때문에 항상 타야만 하는 지하철을 어떻게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해답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주 간단했다.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는 것이었다.

가방이란 본인의 시간과 장소에 따라 필요한 물건을 담는 물건이다. 그렇지만 이젠 단순한 기능성뿐만 아니라 멋으로 매기 시작하면서 가방을 매기 위해 의미 없이 당장 필요하지 않지만 필요할 것 같아서 챙기는 물건들로 채우게 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비싼 명품가방을 자랑하기 위해서 굳이 가지고 다니지 않는 물건을 넣고 다닌다던지 말이다.
그래서 첫날은 과감하게 가방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겨울 외투 속에 몇 가지 챙겨갔다. 꼭 필요한 물건들만. 첫 출근길은 왠지 모르게 불안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불안하기만 했지 막상 어떤 물건을 놓고왔다던지, 딱히 당장 물건이 필요한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지하철안에서 사람들에게 부딪치는 횟수가 적어져 불편하지 않았다. 너무 편했다. 추운 날 시린 손으로 가방에서 무언갈 꺼내는 행위를 하지 않아서 좋았다. 따뜻한 외투 주머니 안에 손을 넣고 필요하면 바로 그 안에서 물건을 짚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던 옷 주머니도 하나의 작은 가방 또는 파우치 같은 것이었는데..., 보통 여자의 바지 같은 경우 주머니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그것 때문에 가방을 들고 다녔던 것 같기도 하다. 예전이였으면 두꺼운 겨울 외투로 둔해진 몸에 또 가방 하나를 매는것 조차 불편했을 텐데. 오히려 가방이 없어지니 되도록 옷을 사입을때도 주머니의 유/무를 따지게 되었다. 두달 전 다녀온 해외여행에서도 캐리어가 아닌 배낭가방으로 6박5일 짐을 담아 갔던 것도 그 계기이다.
그렇게 가방이란 존재에 대해 관심이 없어질때 가방이 없는 사람을 특이하게 보는 시선도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마치 가방을 액세서리가 아닌, 하나의 옷으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아마 나도 가방 없는 삶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그들과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봤을 것이다.
오늘도 내 어깨와 손은 자유롭고 단지 겉옷 주머니 안에 카드지갑, 에어팟, 그리고 핸드폰이 전부다.